제주여행 중 비가 오는 날이 있다면, 대체할 만한 여행지가 몇 없다. 많이들 알고 있는 서귀포 엉또폭포, 한라산 사라오름 등 야외 관광지가 있을 수 있고, 나머지는 실내 관광지일 듯하다. 여기에 물영아리오름 하나 추가하고 싶다. 산정에 화구호를 가진 오름, 물영아리오름. 오름 분화구에 물이 고이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백록담에 물이 차듯이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은 물영아리오름에 오르면 물이 찬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비가 내린 양에 따라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차있을지, 조금 차있을지 다르긴 하지만.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주말 물영아리오름을 올랐다. 비 오는 날 오름 분화구에 물이 많이 찼을까 하는 생각에 일회용 비옷도 장만해서 올랐다.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물영아리오름. 지금 제주도에서는 이 일대에 국가정원을 추진한다 만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안 했으면 한다. 뭐, 이미 설계비로 많은 돈을 썼겠지만, 이대로 놔두는 거에 한 표 던진다.
안개가 피오 오르는 듯한 모습이 신비롭다. 이 날, 이 날씨에만 볼 수 있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
오름 밑자락은 삼나무와 짙은 안개가 겹치고, 앞 들판은 방목하는 소들이 돌아다니고.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경관이었다. 다시 가더라도 이런 날씨와 만나고 싶다. 오르는 길은 데크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걷기에 편했지만, 역시 오름을 오르더라도 힘을 안 들일 수 없다. 삼나무와 참식나무가 우점을 이룬 숲.
비가 와서인지 달팽이도 여럿 만났다.
드디어 오른 정상 분화구에는 살짝 아쉽게 물이 차있었지만, 그래도 느낌 있어. 장마철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가득 차겠더라. 다시 가봐야겠다. 비를 맞으면서 물영아리오름에는 올라갈만하다.
내려와서, 주차장으로 돌아 나가려는데, 소 떼가 놀고 있더라. 가까이 갈 수 없게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물론 올레길이나 오름 근처에 방목하고 있는 소를 발견한다면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마라. 다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