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영실코스는 우리 가족이 제일 사랑하는 등산코스이다. 서울에서 부모님이 내려오시면 한 번 이상은 꼭 오르는 곳이다. 남벽분기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윗세오름까지 등산은 반나절이면 뚝딱이기 때문이다. 그런 영실코스도 한 여름, 강렬한 햇볕 아래에서는 힘들다. 대부분의 길이 나무 그늘 밑이 아닌, 열린 공간이라서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등산이 힘들 수 있다. 그래서 한 여름에는 되도록이면 새벽 6시 정도에 등산을 시작하는 게 좋다. 고도가 높아서 기온도 적당하니 좋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백록담이 살짝 막아주어서 등산하기 참 좋다.
한 여름 제주는 뭉게구름이 자주 피어오른다. 아직 한라산에는 구름이 없지만, 저 멀리 바다 위로는 두꺼운 뭉게구름이 피어올라있었다. 한라산 등산 후 찾아간 삼양검은모래해변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올라서 뜨거운 해를 가로막아주고 있었다. 영실기암괴석, 오백나한의 실루엣은 자세히 봐야 한다.
큰 돌에 식물의 씨가 날아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풍성한 머리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바람 많은 한라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생명력이 대단하다.
목재데크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숲 속을 살짝 걸을 수 있다. 아침 일찍 달이 보이는 이 광경은 뭐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주목 나무 아래에 빼꼼히 존재감을 내밀고 있는 산수국이 푸른색 꽃을 자랑하고 있다. 여름은 수국의 계절이지. 산수국 꽃이 피어서 짙푸른 색 일색인 한라산에 파란색을 더해주고 있었다.
영실코스에서 항상 나를 반겨주는 사스래나무.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이 길을 지켜주면 좋겠다.
들판으로 나오니 한라산이 정말 짙푸르다. 이른 아침 해가 올라오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빛이 깨지지 않아서 카메라로 담은 한라산의 색감이 참 좋다. 멀리서 보니 말썽꾸러기 조릿대의 느낌이 없어서 더 좋다.
조금 더 걸으면 백록담이 가까이 보인다. 이 정도 올라갔으면 윗세오름은 금방이다. 백록담 위로 얇은 솜사탕 같은 구름이 걸쳐있다. 백록담이 높긴 높은 거야. 구름은 맨날 백록담에만 걸려있으니.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하기 바로 전 헬기 착륙장에 날아온 주황색 헬기. 뭐하나 싶었는데, 대피소 공사용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화장실 정화조도 함께. 혹시나 뭐가 떨어지는 거 아닌가, 나 한테 떨어지는거 아니야? 잠시 걱정.
윗세오름 간판을 찍고 함께 가지고 올라온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다시 하산.
내려오는 길은 완전히 해가 떠있어서 세상이 좀 더 밝다. 숲이라도 있으니, 푸른 나뭇잎 아래로 시원한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