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해변을 생각나게 한, 최근에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숲은 알고 있다" 의 한 글귀, 노을이 지는 오키나와 바닷가를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표한한 부분이 있어서 인용해본다.
"주홍빛을 머금기 시작한 석양이 섬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해변을 곱게 물들였다. 수평선의 석양은 이미 시들해졌고, 해변에는 등 뒤의 밤하늘이 바짝 다가왔다. 양동이 물을 정수리부터 쏟아부었다. 발밑에서 튀어 오른 물소리가 뒤편 검은 숲에 울려 퍼졌다. 바람이 젖은 몸을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갔다. 안벽으로 밀려온 파란 파도가 부딪쳤다. 흡사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파도가 안벽에 부딪치며 산산이 깨졌다."
삼양검은모래해변, 참 좋아하는 곳인데 그 매력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주의 바다를 떠올리면, 함덕, 협재 해변의 에매랄드 빛 바다와 백사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곳 현지인들은 관광객 많이 몰리는 함덕, 협재 해변보다는 삼양검은모래해변을 많이 찾는다. 검은모래사장의 매력과 해가 떨어지는 시간 파도에 부서지는 햇살과 검은모래에 반영되는 하늘의 풍경이 매력적인 곳이다.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는 바닷물과는 다른 시원하고 상쾌함이 있어서 모래사장을 맨발로 산책하기 좋다.
부모님이 오랜만에 제주도에 내려오셨다. 무탈이의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이 함께 했는데,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1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은 제주도 방문 목적은 무탈이의 백일이니까, 제주도 관광은 소소하게 한라산 영실코스 등반과 삼양검은모래해변 산책 정도다. 한라산은 언제 가도, 어떤 날씨에 가더라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해변은 특정 시간에 방문해야 그 맛이 좋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은 마음이 답답하고, 걷더라도 땀이 나서 불쾌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사진이 잘 안 찍힌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난 보통날에 해변은 4시 이후, 해가 떨어질 무렵에 잘 찾는다. 이번에도 해가 떨어질 무렵에 찾았는데, 예상 적중, 사진 잘 찍히고 산책하기 상쾌하다.
와이프는 검은모래해변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래사장에서 놀고 나면 발 사이에 뭍은 검은모래가 외관상 지저분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집 근처 쉽게 갈 수 있는 해변으로 더할 나위 없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서 주변 공터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걸 더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해변의 이런 그러데이션, 색감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다. 에매랄드 빛은 아니지만 푸름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
부모님의 기억 속에는 검은모래해변은 인상적인 곳이다. 한 여름 검은모래해변의 뜨거운 모래사장에서의 찜질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용천수의 얼얼할 정도의 시원함을 아직도 기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