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고 있는 한 가드너의 사진과 글귀에 별거 아니지만, 식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 한 가지를 생각해봤다. 사진 찍기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식재 전에 선택한 장면을 중점으로 식물을 배치해 보는 것이다. 전방위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가 학습하여 알고 있는 안정적인 구도의 한 장면이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조금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큰 나무, 또는 건축물이 뼈대를 잡고 그 안을 채워나가는 작업부터 시작하면 플랜팅의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Discovering viewpoints before planting starts.”
이와 같은 맥락으로, 나는 사진을 찍을 때 항상 학습된 안정적인 구도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 안에 인물을 놓고 찍으면 실패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오늘 만난 한라생태숲의 한 장면, 구도에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좀 부족한, 앞으로 이 공간에 무엇을 더 채워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날 한라생태숲의 모든 나무들이 잎을 떨궜고, 잎의 아름다움 만큼 가지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겨울이 되어야 돋보이는 가지, 때죽나무처럼 그 밀도가 상당히 높은 종과 멀구슬나무처럼 밀도가 낮고 굵은 가지를 가지고 있는 종을 섞어 놓으면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지만 남는 종과 편백나무(제주도 하면 삼나무가 떠오르지만,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지 않다.)처럼 고깔 모양으로 키가 큰 상록수가 포인트로 뼈대를 잡아준다면 멋진 구도, 사진 찍기 좋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지금은 목재데크가 갈라지는 길 옆으로, 시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산수국이 놓여 있는데, 잎이 넓고 반들반들한 혁질인 키 작은 나무(만병초가 갑자기 떠오른다.)가 있다면 겨울에도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의 색이 걷힌 생태숲은 수많은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들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스산하다.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국권을 침탈당한 을사늑약이 있던 1905년 스럽다는 뜻이다.) 을씨년스럽다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상상조차 힘들 정도로 소름 돋는 상황일 것 같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했던 가을 수목원 풍경이 을씨년스럽다는 취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겨울 나뭇가지라도 자세히 보면 그 끝에 색을 가지고 있다. 마른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멀구슬나무처럼 연둣빛을 가지고 있거나 단풍나무처럼 붉은빛을 가지고 있는 나무도 있어서 하늘을 자세히 바라보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천천히 자세히 봐야 보인다.
겨울나무의 가지가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뻗어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질서 있게 서로 섞이지 않고 나무의 고유한 모습, 수형 안에서 채워져 있다. 그 질서를 까치는 눈치챘나 보다. 가지 사이로 쏙 들어가 앉아있다.
시원하면서도 찬 겨울바람이 불던 생태숲에서 오로지 하얀 솜 같은 털을 가지고 있는 억새꽃이 따뜻함을 안겨준다. 절정을 지난 억새꽃은 누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따뜻함은 짙다.
한적했던 일요일 오후 한라생태숲에서 만난 노루. 궁둥이에 하얀 털을 가지고 있는 노루, 너 참 귀엽다. 매력덩어리 노루궁둥이. 한라산에서 먹이를 찾아 내려왔나 보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깜짝 놀라 나와 눈이 마주친 노루. 와이프는 제주에서 노루를 볼 때면 노루가 항상 짝을 이뤄서 나타난다고 한다. 정말 주위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안녕.
https://youtu.be/FCzp3tLir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