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9. 22:45ㆍ세계여행
도시 거리의 디테일이 예술이었던 일본 후쿠오카 여행 _ 유후인
지난 후쿠오카 여행은 서울에 있는 지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벚꽃이 만발한 4월 둘째 주였습니다. 여행 스케줄과 숙소 예약은 일본 여행을 많이 해보신 누님과 와이프가 정했고, 남자들은 따라만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에서 스케줄 정하기는 어렵죠. 이 사람 저 사람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하면 스케줄 짜는 사람이 머리 아프니 전 그냥 가만히 있었죠. 일본 여행은 항상 와이프의 스케줄에 따라 이동합니다. 정말 관심이 많았던 교토의 정원 여행은 스케줄에 관심을 보이고 조정도 했지만, 숙소 예약하고, 관광지 돌아다니는 것은 와이프가 정해준 데로 토 달지 않고 다녀오는 게 진리인 것 같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유후이노모리(YUFUIN NO MORI)를 타고 유후인으로 이동했습니다. 레일패스 같은 건 와이프와 일행이 알아서 해주고 난 띵가띵가 따라만 다니기. :D 클래식한 외관이 특징인 유후이노모리를 타고, 일본에 왔으니 낮부터 남자들은 아사히 클리어를 들이켜주시고, 기념품 배지도 질렀습니다.



유후인역은 시골 간이역 같았지만 외관은 건축미가 독특했습니다. 돈 잘 버는 시골 온천 동네는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검은 목재 마감이 딱 니폰스타일로 느껴집니다. 유후인역을 나오면 지역의 명산 유후 타케가 바라보이고, 역 주변으로 마차와 인력거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더군요.




숙소는 매우 만족이었습니다. 다다미방에 온천욕을 살짝 즐길 수 있는 시설까지. 게다가 저렴했다고 하네요. 역에 내려 대로를 따라 쭉~ 직진하면, 하천변에 위치한 여관이었습니다. 벚꽃이 만발하고, 자목련까지 활짝 피었던 곳. 후쿠오카 여행은 4월 초에서 중순 꽃구경이 최고인 거 같네요.


짐을 풀고 조금 늦었지만 가까운 곳이라도 둘러보기 위해, 롤케익이 유명하다는 비스피크(B-Speak) 찾았습니다. 외관이 독특합니다. 나무판자를 겹겹이 붙여서.. 요즘 한국의 많은 카페에서도 이런 인테리어 스타일을 종종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롤케이크의 맛도 맛이지만, 역시 일본 아이들은 포장술이 대단합니다. 포장만 잘해도 몇 천 원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첫날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숙소에서 맥주 진탕 마시기. 일본은 맥주가 맛있으니까요. :D
유후인에서의 아침 일정은 물안개가 환상이라는 긴린코 호수부터였습니다. 물안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여관 조식을 먹고 출발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조식이 포함된 숙박을 할 때는 배 빵빵하게 조식을 먹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먹고 나오곤 합니다. 마을 안쪽 길을 따라 쭉 걸어 들어갑니다. 구글맵이 우리 일행을 인도했지요. 역 주변 풍경과 다르게 긴린코호수로 가는 길에는 많은 농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시골 풍경과 비슷하지만, 역시 생활수준의 차이인지 정원을 가꾸는 모습이 풍요롭게 보이더군요. 돌담 위에 식물을 심은 것과 많은 나무, 초화들이 제주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동질감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의문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이나마 개화시기가 다른 수목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날 숙소 근처에서 보았던 벚나무와 자목련도 그렇고, 조팝에 만병초까지 개화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봄 관광객을 위해 온실에서 키운 나무를 옮겨 심지 않고는 이럴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유후인 거리에서 보았던 많은 식재기법을 제주에서도 활용해봐야겠습니다.


마을 안쪽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낮은 동산이 보이고, 삼나무와 대나무 숲이 보입니다. 거의 다 왔으니 쉬지 마시고 좀 더 쭉 걸어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침 일찍이라 호수에 물안개가 살짝 끼어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청송의 주산지, 화순의 세량지 같은 아름다운 장소가 있는데, 이와 매우 흡사한 경관이었습니다. 버드나무 새순의 연녹색과 벚나무의 꽃잎의 연분홍이 호수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긴린코 호수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안쪽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면 상점들이 여럿 있습니다. 많은 상점이나 가택에서 대나무 울타리와 문을 만들어 사용하더군요. 답답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유후인 어디를 가나 이끼가 많은데 날씨가 습해서 그러겠죠? 보기는 좋아도 사는 데는 살짝 힘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제주도도 습한 여름에는 정말 살기 힘드니까요.


마차 위의 토분과 초화는 연출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 사람을 모이게 만드는 이유는 이런 소소한 연출에서 부터 시작인 것 같네요. 마차 위의 토분, 초화와 같이 인위적인 연출도 좋지만, 아래의 사진처럼 널찍한 돌 세개 만으로 무대를 만든 것 같은 모습도 훌륭했습니다. 무심한 듯 보이는 돌 세 개를 놓기 위해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요.


건물의 주변에는 공간의 스케일에 맞게 다양한 식물을 배식했고, 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지않은 노력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모든 곳이 수목의 키에 맞춰 다층구조로 식재한 모습이 대단합니다. 교목에서 아교목, 관목에서 초화, 지피까지 수직적으로 공간을 꽉꽉 채워 녹시율도 대단히 높았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는 통로 이외에 모든 곳이 사람의 손이 만들어낸 정원 같았습니다. 긴린코호수와 안쪽 상점 구경을 마치고, 번화가 쪽으로 발을 옮겨 봅니다. 여행책자에 나온 유명한 상점들과 점심을 먹으러 고고~
아침 일정으로 긴린코 호수를 지나 마을 쪽으로 다시 발을 옮겨 상점거리로 향합니다. 지난밤에 즐긴 온천욕, 맛있는 맥주, 일본 밥상과 더불어 여행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쇼핑이죠. 도시의 대형 쇼핑몰보다는 아기자기한 상점이 모여있는 유후인의 상점거리는 지름신 강림하기 딱인 곳이더군요.


상점 앞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초화를 배식하거나(단일수종으로 가볍게 꾸미거나 하지 않는), 꽃피는 나무를 심어 상점거리 전체가 꽃길이 되게끔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여름, 가을, 겨울에는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봄의 유후인 거리를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판석포장 공간을 잘라내어 어떻게든 상점 앞 정원을 만들려는 노력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거리의 풍경에서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건물 외관의 동질감으로부터 지역의 특색이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유후인 상점거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핫했던 토토로상점입니다. 비싸서 마구 지르지는 못했지만 언제봐도 좋은 녀석들입니다. 정말 돈 잘버는 효자 캐릭터네요.




오전 상점거리 나들이를 마치고 여행책자에 없는 한적한 식당에서 덮밥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큰돈 주고 먹지 않을 거라면, 음식의 맛이 비슷겠다는 판단에 사람 붐비지 않은 곳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기 위해서죠.

점심후 다시 힘내서 오전에 못 본 상점들을 향했습니다. 꿀을 소재로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도 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진한 노랑으로 빛나는 꿀이 더 먹음직스럽더군요.


일본의 카페문화도 체험할 겸, 지친 다리를 위로할 겸 카페도 몇 들렀습니다. 도넛과 커피 맛이 좋은 Nico라는 카페는 유후인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차 타기 전에 잠시 쉬었다 가셔도 좋을 것 같네요.


일층은 목각인형을 파는 상점을, 이층은 카페를 운영하는 또 다른 카페는 뜨거운 우유에 초콜렛을 직접 녹여 먹는 방식이 특이하더군요. 섞으면 핫초코 맛이 지만 만들어 먹는 느낌이랄까...


상점거리 사이사이 유명한 군것질 가게도 있습니다. 금상고로케라고 여행책자에 나올 만큼 유명한 집인데... 개인적으로 그냥 그럭저럭.



한국인이 정말 많이 와서인지, 무슨 사연으로 이런 식당을 운영하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가게도 있네요. 알고 보면 동네 주민들 사이 맛집일지도 모르지만요. 유후인에서의 1박2일을 끝내고 다시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유후인역에서 열차를 기다렸습니다. 역 안에는 족욕탕이 있으니 열차를 기다리시는 동안 발의 피로를 풀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유후인은 당일치기로 오면 살짝 아쉬울 것 같네요. 상점거리만 둘러봐도 반나절 이상 걸리고,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니 저녁에 온천욕도 즐겨야 하니까요. 다음에 다시 올때도 꼭 4월에 꽃 만발할 때 오는 걸로.
유후인에서의 1박 2일은 생각지도 않게 흥미로웠습니다. 쇼핑, 맛집으로 만족했다기보다, 도시의 거리를 보고 정말 흐뭇했습니다. 언젠가는 정말 다시 오고 싶을 정도의 매력이었습니다. 일본 여행 중에 발견한 작은 정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수많은 콘크리트 포장의 마당이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갖고 싶지만 유지관리라는 게으름 때문에 콘크리트로 마감 처리되는 수많은 마당이 있습니다. 거창한 정원은 아니지만, 딱딱한 콘크리트 포장을 조금만 깨어내고 녹색의 씨앗을 뿌린다면 훨씬 행복한 주거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주에서 조경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신경 쓰였던 공사는 도로 옆 식수대입니다. 도로 폭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기법이 다르겠지만, 제주에는 찾아볼 수 없는 쾌적함이 거리 곳곳에서 보이더군요. 유후인 거리의 식수대는 도로의 아스콘 포장과 측구, 식수대, 가로수, 보도포장이 완전 일체형 디자인인 것 같아요. 보도 폭이 좁아도 적절한 디자인으로 식수대도 확보했고요.


새롭게 단장한 도로가 아닌, 마을 구석의 도로에서도 보행자를 위한 배려도 눈에 보입니다. 도로의 비가 빠지는 측구의 구멍에 행여나 열쇠, 동전이 빠질까 봐 작은 덮개를 설치했더군요. (우수관으로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만요.) 우리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사소한 디테일입니다. 목재 볼라드 위에 철재를 감싼 것도 사소한 정성입니다. 무엇을 하든 조금 더 깊게 꾸밀 줄 아는 일본인.


또 하나 감동받은 식재 디테일. 평범한 마을 길 옆에 전석을 낮게 쌓고, 사이목으로 정말 다양한 수종을 심었더군요. 우리는 무조건 철쭉 아니면 개나리로 도배를 하는데 말입니다. 사진 몇 장만 봐도 만병초, 식나무, 곰취, 황매화, 조릿대, 왜란, 화살나무, 조팝나무, 석암, 다정큼나무, 수국, 호랑가시나무 등 정말 많은 수종이 오밀조밀 식재되어 있있더군요. 당연히 이렇게 심으면 인부들 품이 더 들겠죠. 우리는 힘들어하는 이런 식재를 일본은 마을 구석구석 하고 있는데 말이죠. 제주도도 조금 더 분발해서 따라가야 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푸릇해지는 사진입니다. 보행 동선 사이에 위치해서 쉽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녹지공간에 새로 씨앗을 뿌리고, 통행을 막기 위해 막대와 줄을 연결. 앞으로 무엇이 피어날지 알려주는 씨앗 봉투. 지금은 맨땅이지만 앞으로 씨앗봉투의 사진처럼 변하게 될 이 공간을 상상하면서 마음이 푸릇푸릇해지더군요. 굿 아이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