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2. 10:37ㆍ제주의 자연
겨울 한라산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상고대(서리가 나무나 풀 따위 물체에 들러붙어 얼어붙은 것)는 처음 만났다. 폭설이 내려서 눈이 쌓인 한라산은 바람과 함께 멋진 상고대를 만들었다.
"한라산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눈이 내린 영실"
예상치 못했던 시작이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지만, 얼어붙은 도로 때문에 주차장에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 도로에 차를 세우고 눈이 얼어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등산로 입구까지 3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가볍게 시작해야 할 영실코스를 조금은 힘겹게 시작했다. 저 멀리 나뭇가지 너머로 오백장군, 오백나한으로 불리는 영실기암이 보인다. 한라산 최고의 풍경은 영실기암이라고 생각하는데, 눈이 쌓였을 때 만나는 그곳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
눈이 쌓여서 만들어진 부드러운 굴곡에 햇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 마시멜로를 보는 것 같아서, 한 움큼 쥐어서 먹어보고 싶었다.
영실코스는 제주도, 한라산 서쪽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라서 영실기암으로 오르다 보면 서쪽, 서남쪽 제주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언제 봐도 멋있는 영실기암.
오르막 경사를 지나면 펼쳐지는 평지, 낮게 자라고 있던 나무에 눈이 얼어붙었다. 그 모양이 바람의 방향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해서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다만, 오늘의 목적지는 남벽분기점이기 때문에 입산통제 시간에 맞춰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걸었다. 윗세오름에 유난히 까마귀가 많다. 새 중에서도 지능이 높다고 하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남벽분기점에는 처음이다. 돈내코 코스에서 올라오면 남벽분기점으로 바로 갈 수 있는데, 교통편이 열악하고 코스가 어렵다고 해서 아직 도전해보지는 못했다.
영실코스에서는 정상으로 올라갈 수는 없지만 가장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한라산 정상이 눈 앞이지만, 백록담으로 올라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언젠가는 올라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비현실적인 풍경, 아름답다. 추워 보인다. 사진으로 보던 핀란드 겨울왕국 못지않다.
남벽분기점 전망대에 도착해서 배낭을 내려놓고, 점심 준비를 했다. 물론, 한라산 등산에 컵라면이 빠질 수 없지.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이제는 컵라면을 팔지 않으니, 뜨거운 물과 함께 개인이 준비해와야 한다. 무거운 물통을 들고 걸어야 하지만 이 순간을 위해 감내할 만하다.
눈 속에 묻힌 나무들을 보면, 한라산 식물의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바람 많고 눈, 비 많은 한라산에서 살아남은 강한 녀석들.
영실코스를 오를 때는 여유가 있다면 남벽분기점까지 꼭 갔다가 오는 것을 추천한다. 한라산 영실코스(윗세오름 까지)는 왕복 4시간이면 여유 있게 갔다 올 수 있는 길이지만, 주차장 올라가는 길과 남벽분기점까지 가는 길이 추가되면서, 여기에 눈까지 합쳐지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또, 눈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얼굴과 손이 타버렸다. 겨울산행에서 아이젠은 두말할 것 없이 필수, 마스크, 고글, 장갑도 챙겨야 산행 후 컨디션 회복에 좋을듯하다.
“절대로 겨울산을 무시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