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5. 13:20ㆍ제주살이/제주살이와 무탈이
결혼 10년 차까지 애가 없었다. 신혼에는 “아이는 언제든지 찾아오겠지”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하나 둘 지나면서 조급증이 생길 때도 있었고, 애 없이 둘만 재밌게 살자라는 대안을 생각하기도 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신혼 이후를 보낸 것 같다. 정말 난 와이프와 둘이 있어도 재밌고 좋았다. 한편으로는 와이프가 제주도에서 혼자 외로워해서 아이라도 있으면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복잡 미묘한 상황에서 암묵적인 합의, “둘이 행복하게 지내고 아이가 찾아오면 기쁘게 받아들이자.”를 가졌다. 일부러 병원에 찾아가서 난임시술을 받는 건 싫었다. 왜는 없었고 그냥 막연하게 싫었다. 왜 아직 애가 없냐? 병원은 가봤냐? 나이 먹고 애 없으면 후회한다. 등 주변에서 쓸데없는 참견이 많았다. 양가 부모님의 눈치는 내가 강력하게 막을 수 있었지만, 가벼운 친분의 지인들의 지나가는 식의 이런 말에 마음은 가볍지가 않았다. 듣기 싫어서 회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아이 없이 지낸다, 우린 딩크족이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2020년, 내 나이 39세에 큰 결심을 했다. 40 이후에 아이를 낳는 건 내 인생에도, 아이 인생에도 좋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2021년까지 아이가 찾아오지 않으면 묶으려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시작된 2020년, 집 근처 사라봉 산책과 주말마다 올레길 등을 걸으며 뜻하지 않게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생각지 않게 무탈이가 찾아왔다. 전날 아끼던 후임의 송별식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던 아침, 테스트기를 확인한 와이프가 갑자기 놀랜다. “오빠! 큰일 났어! 나 임신했나 봐.” 잔뜩 상기된 와이프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몰라, “뭐가 큰일 나, 좋은 거지”라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의 준비가 그때도 안된 것 같았다. 와이프는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나보다 먼저 씻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난 숙취에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현관은 같이 나갔는데, 한참을 앞서가는 와이프의 씩씩한 발걸음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난,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내가 그동안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던 건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온다.

그날 아침 와이프가 찾아간 병원은 코로나 방역수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어서 본인 혼자만 병원에 들어갈 수 있고, 남편은 안되고(다행히 난 안 따라 갔지만) 1층에서 열 체크 후 입장이 가능했다. 급하게 버스 타고 걸어가면서 열이 올랐는지, 체온이 높았던 아내는 진료를 거부당했다. 열 내리면 다시 오라는 이야기에 집으로 돌아왔고,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오후에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회사에 반차를 쓰고 나와 같이 가자, 오후에 찾은 병원은 동반 입장이 가능했다.

아이의 심장소리가 씩씩하게 울려퍼졌다. 와,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야 만나다니.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결혼 10년 차라는 이야기에, 최근에 무슨 좋은 걸 먹었냐는 싱거운 농담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에 정말 행복했다. 아직은 안정기가 아니니, 좀 지나서 부모님께 이야기하자고 아내에게 살짝 말했지만, 전화기를 들고 바로 시댁 부모님께 전화를 거는 와이프. “어머니, 어머니 이제 곧 할머니 되세요.” 우리 엄마와 아내, 둘 다 울더라. 그때를 다시 생각하니,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날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시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전화한 거 같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맥도널드 드라이브스루로 햄버거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 생각 없이 콜라를 마셨다. 먹어도 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조심하지 했다는 자책을 조금은 했다.
연초에 늦은 승진과 함께, 무탈이 까지 찾아온 2020년은 정말, 단순한 표현이지만 최고의 해였다. 그래도 티내지 말고, 속으로 웃어야겠다.
Socrates quote : Remember that there is nothing stable in human affair, therefore avoid undue elation in prosperity, or undue depression in ad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