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홈파티를 위해 이브에 연차를 사용하고, 배가 무거운 와이프와 무탈이를 병원에서 건강하게 있는지 확인하고, 큰마음먹고 킹크랩을 먹어보기로 했다. 인생에서 딱 한 번, 장모님 환갑 생신 때 서울에 있는 크레버 대게나라에서 먹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 인생 킹크랩이었다. 연말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많은 산모들이 원했고 유행처럼 즐겼던 태교여행도 못하게 되었으니, 킹크랩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잖아? 계산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흔하게 먹지 못하는 킹크랩으로 크리스마스이브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평소, 할로윈에 왜 그리 미친 듯이 열광하는 거야?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난 왜 크리스마스에 왜 그리 마음을 두고 있는 거야? 교회에 안 간지도 10년이 넘어가는 녀석이, 오지랖이 넓었던 것 같다. 그냥 지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크리스마스나 핼러윈에 흥분하는 거지 뭐.
아침 일찍 산부인과에 갔더니, 코로나 때문에 산모 혼자 들어오란다. 나도 무탈이 보고 싶었는데, 안전이 우선이지.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는데, 2.6kg, 이 주 동안 폭풍 성장했네. 짜식. 일단,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동이 나기 전에 블리케익을 찾았다. 좀 전에 케이크가 나왔다는 인스타그램 소식을 잽싸게 읽어 낸 와이프. 며칠 전 사닮과에서는 홀케이크 주문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퇴짜 맞아서, 홀케이크는 미련 없이 포기하고 조각케익이라도 얻을 생각에, 에그타르트 맛있게 하는 블리케익으로 차를 돌렸다.
15분 전에 인스타그램 피드를 읽은 것 같은데, 여기도 동이 난 메뉴가 많았다. 하는 수 없이 몇 가지 작은 케이크와 이 집에서 최고로 애정하고 있는 에그타르트를 왕창 샀더니, 값은 홀케이크 만만치 않게 나오더라. 오늘 돈 좀 많이 쓰겠다.
다음은 킹크랩 찾아 삼만리. 처음 찾은 태양전복 본점은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좀 많았다. “킹크랩 있어요? 전부 나갔어요, 아침부터 전화가 불이 났고, 전부 예약하셨어요.” 수족관에 킹크랩 참 많이 담아있었는데, 킹크랩을 많은 사람들이 사 먹고 있구나, 다들 먹고살만하구나. 다른 지점에 전화해서 남은거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하길래, 핸드폰을 확인하는 순간 벌써 제주맘 카페에 모든 지점 매진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제주맘 카페, 너란 녀석은 그 어느 소식통보다도 빠르구나. 코로나 소식뿐만 아니라 이런 일 까지 카페에 올라오다니. 대단한 제주 엄마들.
우리가 너무 크리스마스이브를 얕봤다고 반성하면서 집으로 가려던 찰나에, 삼화지구에 있는 삼화수산이라도 가볼까? 남은 게 있는지 전화라도 해보자. 아싸! 남은 게 있더라, 1kg당 69,000원으로 태양전복보다 4,000원 더 비쌌지만 단순히 가격으로만 비교할 수는 없고, 오늘 같은 날은 먼저 찜해야 한다는 걸 방금 배웠기 때문에 차를 돌려 삼화수산으로 갔다.
제주방언, 사투리에 “어신게~!”라는 말이 있다. 없다는 뜻인데, 종종 회사 동료들로부터 듣던 익숙한 사투리다. “000이 어신게~” 그러면 “어신게 어신게~”는 없는 게 없다, 전부 다 있다는 뜻이겠지? 간판에 한자 고기 어를 써서 “어(魚)신게 어신게” 나름 재밌다. 젊은 사장님들이 정신없이 회를 썰고 계시더라. 회배달 전문점인듯하다. 연신 살아있는 방어 머리를 고무망치로 빵빵! 임산부에게 안 좋아요. 아내는 차에 들어가 있어. 킹크랩은 3kg은 넘어야 정말 맛있다고, 하지만 한 사람은 1kg이 정량이라고. 우린 둘인데, 무탈이까지 셋 아니냐는 사장님의 위트에 그럼 그냥 3kg으로 주세요. 남으면 냉동해서 또 먹으면 되니까. 석화 한 움큼은 서비스입니다. 드시죠? 네, 없어서 못 먹지요.
흠, 포장은 좋은데, 킹크랩은 제주도 특산물은 아니잖아요, 갈치 한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스티로폼박스 포장, 좋다. 찜기에서 따뜻하게 쪄낸 킹크랩과 석화를 박스에 꼼짝 마 시킨다. 혹시, 킹크랩 해체를 집에 가서 해야 하는데, 대게처럼 전용가위가 있어야 하나? 가게에서 일본산 가위를 4,000원에 판매하고 있었지만, 사장님 왈, 킹크랩은 집에 있는 가위로도 충분히 잘 잘립니다. 아! 다리가 두꺼우니 파먹을 일도 없으니, 다리 마디만 자르면 될 것 같으니 가위는 그냥 안 샀다. 잘했다.
내장이 흘러나오지 않게 뒤집어져 있는 킹크랩과 석화 한 뭉텅이, 혹시나 굴 알레르기가 있는 와이프 때문에 재빨리 석화만 골라서 담는다. 킹크랩 먹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석화찜을 먹는다. 사실 킹크랩은 가져온 지, 스티로품 박스에 담아놓은지 4시간쯤 뒤에, 저녁 시간까지 기다렸다 먹었는데, 다행히 뜨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아, 킹크랩 해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혹시나 해체를 잘못해서 이 비싼 킹크랩 살을 해하지는 않을까, 폭풍 검색을 한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집에 있는 가위로도 충분히 잘 잘린다. 마디, 관절을 가준으로 가위 날을 집어넣으면 스윽~
다리를 마디를 기준으로 잘라준다. 내장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몸통을 들어 올려준다. 자른 다리는 마디를 기준으로 3등분 정도 해준다. 몸통은 다리를 기준으로 잘라준다. 내장 국물이 흥건한 게딱지에 옆으로 붙어있는 생식기? 도 떼어서 넣어준다. 이 놈이 쫄깃하면서 내장 국물과 최고의 조합이다.
크리스마스이브라서 와인도 한 병 땄다. 아, 무탈이 나올 때까지 술 안 마시고 5분대기조 하기로 했는데, 오늘은 아니겠지? 이마트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와인을 싸게 내놓았더라. 연말까지 와인 할인행사는 계속할 듯하다. 오늘은 애증의 1865 와인을 할인하고 있길래 장바구니에 담았다. 살짝 아쉬워서, 끼안띠 클라시코 한 병이랑, 나파 한 병을 담았는데, 솔직히 와인 맛 잘 몰라서, 두고두고 천천히 먹어야겠다. 와이프가 술을 마실 수 있는 그 날까지, 와인이 남아있을 듯하다.
혹시나, 내장이 들어있는 게딱지와 내장이 슬쩍 묻어있는 몸통 살에 알레르기가 있을까 봐 전부 내 거. 다리는 전부 아내 꺼. 결론은 나도 내장에 알레르기가 살짝 있긴 한가 보다. 살짝 간지럽게 모기 물린 듯이 살이 올라오더라. 다 먹고 나면 가라앉긴 하지만, 이것도 알레르기 반응인듯하다.
3kg은 둘이 먹기에 양이 많기는 하더라. 절반 조금 넘게 먹고, 나머지는 가지런히 분리해서 냉동실로 직행. 이번 연말 연휴에 다시 쪄서 먹겠지만, 일단 냉동실에 다리와 몸통, 내장 국물을 얼려버리자. 다음에는 내장 볶음밥이나 해 먹거나, 라면 국물에 넣어서 먹어야겠다.
내장을 잘 보관하고 있던 게딱지 최후의 모습. 고생했다, 우리에게 맛있는 살과 내장을 내어준 너란 녀석, 맛있게 잘 먹었다. 앞으로도 집에서 킹크랩을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보너스 받는 날에.